F.A.

3 Dots

▪ 2017년,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가 시작한 갤러리 어린이 비엔날레는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예술을 추구한다. 

▪ 어린이 비엔날레의 주인공은 어린이와 그 언젠가 어린이였던 부모, 보호자, 선생님 등 어른들을 모두 포함한다.

▪ 2023년 제4회를 맞은 어린이 비엔날레는 예술을 매개로 지금의 어린이가 살아갈 지속 가능한 내일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장으로 꾸려졌다. 

 


 

“미술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뭘까? 고요한 갤러리 안에서 팔짱을 낀 채 작품 앞을 서성이는 어른들이 보인다. 그만큼 미술관은 수 세기 동안 기득권층의 예술 향유 공간이라는 틀 아래 예술을 누릴 여유가 있는 특정 집단 중심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근현대에 들어서며 미술관의 역할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이미지와 역할에서 벗어나 대중을 위한 공공 공간으로 거듭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미술관은 개방적인 건축물, 체험 행사, 친숙한 전시 등 예술이라는 커다란 집합체 안에 다양한 접근 방식을 결부해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중이다. 높이 쌓아 올린 과거의 문턱을 낮춘 채 접근 가능한 새로운 이미지로 시민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는 셈이다. 이제 사람들은 언제든지 전시관을 방문해 예술적 영감을 얻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키운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갤러리는 궁극적으로 예술을 매개로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교육적 공간으로 거듭났다.

 

2017년에 시작된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National Gallery Singapore)의 갤러리 어린이 비엔날레(Gallery Children’s Biennale)도 이러한 기조와 맞닿아 있다. 다양한 국가의 세계 시민이 오가는 싱가포르의 지역적 특성은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의 문화적 바탕과도 같다.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를 지닌 이들이 교차하는 나라의 전시관답게 다양성 및 포용성의 가치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실현하는 셈이다. 그 안에서 이들은 비엔날레라는 전시 형식을 통해 갤러리가 지향하는 목표를 전달하고 세계와 적극적으로 세계와 소통한다. 

 

특별한 점은 아이들을 위한 비엔날레임에도 결코 아이들만을 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갤러리 어린이 비엔날레가 오직 어린이뿐이 아닌, 나이와 관계없이 모든 이들을 위한 전시임을 강조한다.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학예사도, 아이의 손을 잡고 갤러리를 찾은 보호자도 언젠가는 모두 아이였다. 또한 아이들의 삶은 늘 부모, 보호자, 선생님과 같은 어른들과 연결되어 있고 그들의 미래 또한 어른들의 세상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그렇기에 비엔날레의 담당 이사인 수엔 메건 탄(Suenne Megan Tan)은 “갤러리는 어린 학습자에게 영감을 주고 어릴 때부터 예술에 대한 관심을 키울 방법을 항상 모색하고 있으며, 어린이 비엔날레는 예술이 어떻게 어린이와 성인 모두에게 재미있고 영감을 주며 교육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고 말한 바 있다. 세계 최초의 어린이 비엔날레답게 어린이 예술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 관광객,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모여 자기 생각, 관점, 꿈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이 된 것이다.

갤러리 어린이 비엔날레 포스터 ⓒ National Gallery Singapore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 내부 전경 ⓒ National Gallery Singapore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닐 공간을 상실했던 코로나라는 지독한 암흑기를 지나고 다시 싱가포르를 찾아온 어린이 비엔날레는 2023년 “Let’s Make a Better Place(더 좋은 곳을 만들자)”는 주제로 전 세계의 관객들을 맞이했다. 어느덧 네 번째 된 지난해 비엔날레는 아이들을 위한 예술이 중심이었던 이전과 달리 관객의 범주에 부모 또는 보호자의 역할을 명확히 명시해 눈길을 끌었다.

 

비엔날레의 수석 프로그래머인 누르디아나 라흐마트(Nurdiana Rahmat)는 한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엄마가 된 개인적인 경험은 비엔날레의 주제, “더 나은 곳을 만들자”를 확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곳에서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우리 어른들이 어떤 것을 물려줄지 두렵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발언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한 부모의 책임과 일종의 두려움이 이번 비엔날레 곳곳에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사실 오늘날 아이들이 직면한 위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된 자연환경, 빈부격차가 심화된 지역 사회, 일상을 뒤흔드는 기후변화 등 당장 우리 삶의 공간에 찾아온 크나큰 위협들은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물려 줄 세상에 자리한 것이기도 하다. 먼 훗날 아이들이 살아갈 땅에서 아름답고 쾌적한 자연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된다면 지금 어른으로서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는 이 모두가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책임이며, 풀어가야 할 문제임을 인지하고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갤러리는 예술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관객에게 인식시키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비엔날레를 구성했다. 거대한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하나의 작은 세계로 상정한 이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떤 예술적 상상과 경험이 필요할지 고민한 작품들을 동남아시아 예술가 10명과 함께 선보였다. 11개의 인터랙티브와 몰입형 작품들은 대주제 “Let’s Make a Better Place”의 실현을 위한 Care(배려), Respect(존중), Imagination(상상), Collaboration(협력)이라는 4개의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펼쳐졌다. 갤러리의 공간을 넓게 활용한 체험과 몰입 위주의 작품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가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신체를 이용해 감각하고, 탐험하며, 연결되는 경험은 더 좋은 세상의 모습을 상상하고, 구현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지야나 슈하이미(Izziyana Suhaimi)의 <Can you see the forest for the trees?> ⓒ Izziyana Suhaimi, National Gallery Singapore
타와차이 푼투사와스디(Tawatchai Puntusanwasdi)의 <Optical Paths> ⓒ Tawatchai Puntusanwasdi, National Gallery Singapore

Care: 작은 것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하는 배려

싱가포르의 섬유 예술가 이지야나 슈하이미(Izziyana Suhaimi)의 <Can you see the forest for the trees?>는 관객이 직접 재활용 실을 엮어 하나의 사회를 만들어 보는 참여 체험형 작품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의 손으로 직조하며 복잡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경험은 관객과 매립지, 지역 사회 사이의 관계를 재고하게 만든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Can’t see the forest for the tree)”라는 관용구에서 시작한 이 작품은 나를 비롯해 우리를 둘러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관객은 이 작품을 통해 직접 재활용 실을 엮고, 구멍을 꿰매는 활동을 통해 하나의 천을 만들어 나가고 고친다. 멀리서 봤을 때 하나의 작은 숲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활동을 통해 버리려던 옷과 섬유 조각들을 단순한 직조 기술을 활용해 다시 재사용함으로써 매립지의 크기와 수를 줄여 지역 사회가 더욱 건강해지는 과정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아이들은 직접 무언가를 창작하거나 고치는 활동이 세상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책임감도 느끼게 된다.

 

Imagination: 세상을 바꿀 새로운 인식과 상상

태국 예술가 타와차이 푼투사와스디(Tawatchai Puntusanwasdi)의 <Optical Paths>는 대담한 선과 곡선에 다채로운 색상을 입힌 대형 비닐 작품으로 우리가 사는 공간을 새롭게 인식해 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바닥과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하얀 바탕을 배경으로 단순한 여러 색상의 곡선이 자유롭게 벽면을 가로지른다. 선과 면, 굴곡이 어우러져 형성된 작고도 큰 여러 도형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물체의 형상과 닮았다. 관람객은 위치를 이동하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시선을 통해 다양한 깊이를 감각하고 기존의 규모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착시 현상을 경험한다. 어른들에게는 부담이 적고 접근하기 쉬운 작품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물체와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며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리틀 크리쳐스(LittleCr3atures), 제본 찬드라(Jevon Chandra), 리네트 쿽(Lynette Quek)의 <Hutan> ⓒ LittleCr3atures, Jevon Chandra, Lynette Quek / National Gallery Singapore
조셉 나이아르(Joseph Nair)의 <Memphis West Pictures> ⓒ Joseph Nair, National Gallery Singapore

Collaborate: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 

리틀 크리쳐스(LittleCr3atures), 제본 찬드라(Jevon Chandra), 리네트 쿽(Lynette Quek)이 공동 작업한 <Hutan>은 동남아시아 산림, 창조 신화의 시각적 이미지를 참고한 작품으로, 관람객의 모든 움직임과 상호작용하는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갤러리의 지하라는 위치적 특성에 주목한 이 작품에서 관객은 막 심은 뿌리가 돋아날 묘목의 입장에서 앞으로 펼쳐질 탄생의 순간을 함께 상상한다. 그리고 이 숲을 천천히 산책하듯 걷는다. 느린 보폭으로 이 공간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다. 실제로 관객들은 이 숲에서 다른 사람들이 남긴 발소리와 웃음소리 등의 흔적들을 활용한 소리의 풍경을 들을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빛을 발하는 버섯 작품도 시선을 붙잡는다. 산림과 신화적 이야기, 소리의 풍경이 서로 접목된 이 가상의 공간은 우리의 상상력에 불을 붙인다. 또한 유아 친화적인 설치, 공간 구성, 작품들을 매개로 서로 접촉하고 연결된다. 자연과 조화라는 개념을 녹인 이곳에서 관람객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공존에 대한 개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Respect: 환경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싱가포르 예술가 리 예우(Ly Yewo)는 <When I Am With You>를 통해 해양생물에 대한 거주 공간으로서의 바다를 재현했다. 작가는 2022년 해양 생물을 무단으로 집으로 가져와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접하며 느낀 슬픔과 분노의 기억을 언급하며, 이 작품을 통해 그들의 거주지에 대한 존중의 필요성과 책임감을 환기했다. 깊은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바다에 대한 지식과 바다 탐험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기억들은 서로 연결되어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벽화에 거대하게 펼쳐졌다. 아이들은 거대한 조개에 올라가서 흉내 놀이를, 어른들은 투구게, 불가사리, 기타 바다 생물이 바위 조수 웅덩이와 “모래” 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I Spy”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아이들은 특유의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해양 생물들의 세계에 쉽게 동화되어 탐험하고,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반면 상상하는 힘과 순수를 잃어버린 어른들에게는 다시 어린이처럼 상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렇게 연결된 우리는 친구, 공생관계로서 해양생물들의 세상을 존중하고, 함께 살아 나갈 세상을 그려나갈 수 있다.

갤러리 어린이 비엔날레 전경 ⓒ National Gallery Singapore

상상하는 힘으로 만드는 더 나은 내일

이렇듯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National Gallery Singapore)가 시작한 최초의 어린이 비엔날레는 나이와 관계 없이 모두를 위한 전시를 지향한다. 아이들은 뛰어놀며 배우고, 넘치는 상상력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익힌다. “아이들이 길거리에서도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이를 통해 “변화하는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고 밝힌 갤러리의 목표답게 작품 안에서 세상을 탐구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또 한편으로 어른들은 “어린이를 위해, 어린이와 함께, 어린이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 작품을 통해 부모로서 아이들과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현실에 지쳐 잃었던 기쁨과 탐험, 연결의 기회 등을 누린다. 일상에 지쳐 억눌려 있던 내면의 아이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나이와 국가, 성별을 뛰어넘어 다양한 이들이 한곳에 모이고 연결되는 어린이 비엔날레는 자연히 함께 살아갈 세상의 내일을 그려 본다. 어떤 세상을 아이들에게 남겨주어야 할지, 우리의 세상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의 여지가 남는다. 아이들의 꿈이 계속되고, 어른들 역시 충만히 행복할 세상을 위해 어린 시절의 즐거운 상상과 기쁨이 계속되어야 함을 상기시킨다. 그렇게 예술은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서 지속가능한 내일을 향한 커다란 에너지의 촉발제처럼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